차두리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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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차두리(영어 Cha Du-ri, 1980년 7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출신 축구 지도자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오른쪽 풀백이었다. 과거 축구 선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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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농구
연금까지 기부했던 김주성선수가..있는 곳
https://promy.kbl.or.kr/player-staff/player
KBL 공식 홈페이지
promy.kb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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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농구) - 나무위키
항상 기록에 욕심없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해왔는데 이렇게 기록이 쌓인 것을 보면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이 쌓인 것은 내가 열심히 한 보상
namu.wiki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잠재력은 있지만 외려 동시대 센터인 김태완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말랐지만 그 때는 제대로 못 먹어서 더 마른 몸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대 농구부의 대부 정봉섭이 김주성을 스카웃하고 적극 지원을 했고, 고등학교 및 대학교 선배인 조우현이 도움을 주고 하면서 차츰 실력을 키워갔다. 김주성을 스카웃하기 위해 고려대, 연세대측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김주성은 그간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중앙대학교로 진학했다.
중앙대학교 입학 후 잠재력이 폭발. 임재현, 조우현, 송영진, 황진원과 함께 중앙대 무적 시대를 다시금 열었다. 한때 경쟁자로 꼽히던 김태완을 압도하며, 명실방부한 대학 최고 센터로 자리잡았다. 2m 5cm라는 키가 믿겨지지 않는 스피드와 점프력으로 가볍게 덩크를 꽂고 날아다니며 블록을 하면서 상대 팀들의 인사이드를 송영진과 함께 초토화시켜 버렸다. 프로 진출 이후로는 많이 득점 욕심을 내보이지 않는 편이지만, 대학생 시절 김주성은 전형적인 스코어러였다. 김주성에게 일단 볼만 투입되면 어떻게든 득점으로 이어지곤 했다. 임재현, 박지현 두 포인트 가드는 안정적인 리딩으로 볼을 배급해주었다. 김주성이라는 든든한 기둥 덕분에 황진원, 신동한, 조우현 등 슈터들은 마음놓고 외곽에서 지원사격을 했고, 송영진은 내외곽을 오가며 상대 수비를 휘저었다. 공수에서 완벽한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주성의 중앙대 4년은 허재 이후 가장 빛난 시절이었다.
4년간 김주성이 대학농구계에서 거둔 성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붙일 게 없을 정도였다.
연세대 1학년 때 1993-94 농구대잔치 우승 및 MVP를 차지하며 데뷔한 어느 방송인 정도만이 김주성과 비교할 만한 대학 시절 커리어를 가진 선수라 할 수 있다. 만약 임재현-황진원-조우현-송영진-김주성의 라인업이 외국인 선수를 뺀 프로팀과 맞붙더라도 농구대잔치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이었으리라는 게 대부분의 평이다.
그렇게 드래프트 1번 지명으로 원주 삼보 엑써스에 입단했는데, 99년 정인교와 트레이드되어 삼보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허재는 김주성의 입단이 결정되는 순간 만세를 부르고 다음 날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KBL에서 '외국인 선수들과 부딪치면 과연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시선도 있었으나, 코트 내외를 넘는 허재의 전폭적인 지원과 갈굼(?) 속에 파워 포워드 자리를 소화하면서 어느 정도의 득점 능력과 존재감 있는 블록슛을 앞세워 가볍게 신인왕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 첫 해에 팀을 정규시즌 3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끄는 위엄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한국 농구팀이 금메달을 따는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김주성이 있는 한 동부는 만년 우승후보란 말을 들을 만큼 KBL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2009-10 시즌 기록은 16.3 득점, 6.6 리바운드, 3.9 어시스트, 1.1 스틸, 1.5 블록슛.
2012-13 시즌, 1월 28일 연습 도중 발목부상로 전치 4주의 진단이 나왔다. 이 부상으로 말미암아 동부는 DTD 테크를 탔다.
2013-14 시즌에는 여러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경기가 많아졌고, 부상 여파와 나이 등의 영향으로 인해 예전만 못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동부에서는 김주성 만한 선수도 없었다(...). 김주성에게 걸리는 견제를 나눠줄 거라던 용병은 태업 논란에 부상으로 아웃되고 나머지 용병들은 막말로 김주성만도 못한 영향력을 보여주며 동부의 용병농사 흉작을 한탄하게 만들었다. 결국 팀은 13승 41패로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쓰고 말았다. 어쨌건 나이가 있어도 농구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 차출되며 김주성만한 빅맨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동시에 김주성 이후 그동안 쓸만한 국내파 빅맨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4-15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신인드래프트에서 허재의 아들인 허웅이 5순위로 동부행이 결정되며 KBL 최초로 부자 농구선수[14]와 함께 뛴 선수가 되었다.
2015-16 시즌에는 지난 시즌부터 조금씩 던지기 시작한 3점슛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매 경기 20분 이상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클러치 상황의 외곽슛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외국인 선수들이 상대 수비수에 막혀 멘탈이 승천하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제 몫을 해줬던 유일한 선수였다. 결국 홈인 원주에서 0:3 스윕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팀은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6-17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역대 3번째로 통산 10,000득점을 기록하였다.
2017년 5월 16일 연봉 2억에 1년짜리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를 결정했는데, 2017년 12월 18일에 2017-18 시즌을 마친 후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관련기사 박수칠 때 떠나라의 좋은 예시가 될지도 모르는 명예로운 은퇴의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이며, 2012-13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서장훈에 이어 KBL 선수 두 번째로 은퇴 투어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시작은 2018년 1월 5일 SK 원정경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SK 측은 김주성과 국가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한 문경은 감독, 전희철 코치, 김선형 선수가 같이 있는 피규어를 제작해서 선물했다. 관련 기사
두번째 은퇴 투어는 2018년 1월 24일 kt 원정경기에서 실시되었다. kt 측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여 결승전 경기가 치뤄졌던 코트의 나무를 일부 활용, 당시 멤버들과 함께한 사진이 담긴 기념액자를 선물하였다.
2018년 4월 18일 챔피언결정전 6차전 경기를 끝으로 결국 은퇴. 향후 지도자 연수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2018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으로 연수를 떠났다고 한다.
2018년 12월 25일, 미국에서 부인, 두 딸과 함께 일시 귀국하여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을 진행하였다.관련기사
2.3. 시즌별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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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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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
2002-03
|
54
|
367/638
(57.52%) |
0/1
(00.00%) |
186/260
(71.48%) |
920
|
471
|
121
|
59
|
112
|
|
|
2003-04
|
54
|
402/648
(42.34%) |
0/3
(0.00%) |
187/270
(69.26%) |
991
|
478
|
129
|
62
|
131
|
|
|
2004-05
|
53
|
328/565
(58.05%) |
1/2
(50.00%) |
179/240
(74.58%) |
838
|
310
|
123
|
52
|
112
|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
2005-06
|
53
|
354/631
(47.01%) |
0/3
(0.00%) |
207/264
(78.41%) |
915
|
335
|
144
|
54
|
95
|
|
|
2006-07
|
29
|
177/317
(42.34%) |
0/3
(0.00%) |
148/178
(83.15%) |
502
|
183
|
48
|
36
|
52
|
|
|
2007-08
|
54
|
280/519
(39.14%) |
2/10
(50.00%) |
205/238
(86.13%) |
771
|
319
|
139
|
41
|
121
|
|
|
2008-09
|
47
|
243/432
(42.34%) |
7/20
(35.00%) |
146/177
(82.49%) |
653
|
243
|
119
|
44
|
53
|
|
|
2009-10
|
50
|
329/520
(63.27%) |
0/8
(0.00%) |
156/196
(79.59%) |
814
|
331
|
193
|
57
|
75
|
|
|
2010-11
|
38
|
190/348
(54.60%) |
5/13
(38.46%) |
136/189
(71.96%) |
531
|
202
|
127
|
25
|
44
|
|
|
2011-12
|
53
|
295/520
(56.73%) |
2/13
(15.38%) |
139/197
(70.56%) |
735
|
308
|
189
|
47
|
63
|
|
|
2012-13
|
33
|
165/292
(56.51%) |
2/8
(25.00%) |
70/92
(69.00%) |
406
|
183
|
104
|
36
|
40
|
|
|
2013-14
|
37
|
193/376
(51.33%) |
2/14
(14.29%) |
86/109
(71.96%) |
478
|
244
|
122
|
30
|
33
|
|
|
2014-15
|
54
|
242/454
(53.30%) |
12/35
(34.29%) |
120/171
(70.56%) |
640
|
352
|
181
|
46
|
59
|
|
|
2015-16
|
26
|
81/149
(54.36%) |
32/66
(48.48%) |
45/70
(64.29%) |
303
|
134
|
84
|
16
|
10
|
|
|
2016-17
|
53
|
89/181
(49.18%) |
82/223
(36.77%) |
83/121
(82.56%) |
507
|
220
|
112
|
32
|
19
|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
2017-18
|
54
|
58/113
(51.33%) |
44/122
(36.07%) |
36/51
(70.59%) |
284
|
112
|
42
|
17
|
18
|
|
|
742
|
3793/6713
(56.20%) |
191/544
(35.11%) |
2129/2823
(75.42%) |
10,288
(3위) |
4,425
(2위) |
1,973
|
654
|
1,037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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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지도자 생활[편집]
2.4.1. 감독대행[편집]
1월 7일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끝에 승리를 따내면서 감독대행으로 첫 승을 올렸다.
2.5. 감독 성적[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크리스 다니엘스의 슬램덩크를 블락하는 모습.
뭐니뭐니해도 탁월한 BQ+운동능력을 이용한 수비가 김주성의 최고 무기. 인사이드 플레이어지만 사이즈 대비 발이 상당히 빨라 속공 가담에도 매우 뛰어나고, KBL 데뷔 초기엔 중거리슛을 쏠 수는 있어도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중거리슛에도 능한 면을 보여주게 되었다.[16] 인사이더치고는 마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보다 힘이 좋은 선수를 상대로는 스피드를 앞세운 페이스업 공격을 하고, 자신보다 작은 국내 선수와 매치업되면 높이를 앞세운 포스트업을 써먹으며 상대를 공략한다. 무엇보다 김주성의 최대 장점은 운동능력으로 역대 빅맨 중 한손가락에 꼽을만큼 뛰어나다. [17] 빅맨의 신장으로 190cm대 포워드와 비교해도 스피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쳤으며 좋은 탄력과 신체조건을 활용하여 속공 트레일러 및 수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했다. 프로 저연차 시절엔 덩크슛도 자주 나왔고 외국인 상대로도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시도했고, 은퇴시즌에도 나이 40살에 올스타전에서 김태술의 패스를 받아 엘리웁 덩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패스 플레이로 팀내 볼 흐름을 도우며, 보면 같은 팀 포인트 가드보다도 인사이드에 공 배급은 더 잘해주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직접 잡는 리바운드는 많지 않지만 성실한 박스 아웃으로 팀 동료가 리바운드를 잡게 하고, 스크린 플레이도 열심히 가담한다. 리바운드 후 패스도 일품. 사실상 KBL판 케빈 가넷이라고 보면 된다. 수비 포메이션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긴 리치를 이용한 블록슛, 동 포지션 타 선수들 대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가로수비 그리고 무엇보다 인사이드에서의 기민한 헬프디펜스로는 팀 전체의 수비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점에서 케빈 가넷의 그것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공격에서의 사기더웨이도.
다만 나이가 들고 국가대표와 소속 팀에서 거의 전 경기를 뛰는 혹사를 겪으면서 체력과 스피드가 줄어 급격히 노쇠화를 겪으며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데뷔 10년차 시즌인 2012년 11월 14일,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한 경기 리바운드 0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감독이었던
이처럼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김영만 감독 부임 후 출장시간을 25분 내외로 관리를 해주자 다시금 탑급 빅맨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15-16 시즌 초반 김주성이 부상으로 결장시에 9위까지 내려간 동부는 김주성의 복귀와 웬델 맥키네스의 합류로 인해 파죽지세로 순위를 끌어올리는 상황이다.[18] 거기에 나이가 들며 골밑 싸움에 힘이 부치는지 2014-15 시즌 부터 간간히 늘려가던 3점슛 시도를 2015-16 시즌부터는 작정하고 슈터로 변신이나 한 듯 던져대는 바람에 상대 입장에서는 더 까다로운 선수로 변해버렸다.[19] 참고로 2016-17 시즌에는 다른 슈터들보다 월등한 성공률[20]을 보이며 3점슛 성공률 1위를 달리고 있다. (16년 11월 20일 기준)
매우 마른 체형으로 유명하다. 김주성 본인도 몸무게를 늘이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으나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해도 웨이트가 늘지 않거나 조금 늘었다 해도 곧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고 한다.
어쨌든 KBL 최고 수준의 가치를 가진 선수. 현행 샐러리캡 제도에서는 엄청난 연봉(2010년 기준 6억 9천만원)을 받지만 연봉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다.
4. 이모저모[편집]
4.1. 과도한 리액션과 비매너 플레이[편집]

이런 류의 짤방도 경기당 자기 블록슛 수치만큼 만든다.

일반인들에게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한 성실함과 부지런함, 팀에 대한 헌신 등등 좋은 프로 선수의 덕목을 고루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 김주성이지만 농구 매니아들은 경기 매너가 나쁜 선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등 절로 언짢아지는 사고를 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경기 도중 서장훈의 목덜미를 배구 스파이크하듯 내려쳤던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김주성은 두고두고 농구 팬들에게 주성타'''불리며 욕을 먹었다. 이 사건으로 이미지가 좋은 김주성을 나쁜 의미로 다시 봤다는 사람도 많다.[21][22]
외곽에서의 신경전과 몸싸움이 가장 치열한 골밑에서 활동하는 선수인 것을 미루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는데 이게 말이 안되는 것이 골밑이 아닌 곳에서도 악의적인 가격을 하기 때문이다.[23][24] 09-10시즌 김주성은 3점슛을 날리던 조성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곧이어 상대 진영에 공을 몰고오는 조성민의 명치에 펀치를 날리기도 하였다. 이런게 한두번이 아니다. 또 은퇴직전에 까마득한 후배에게 크로스라인을 시전해 주셨다.
가면 갈수록 늘어가는 할리우드 액션도 문제.[25] 파울 유도는 잘 하면 좋은 것이지만 눈에 띄게 과도한 액션이 많으며 이로 인한 비판도 많이 받는다. 2011년 3월 25일 벌어진 동부와 LG간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대로 할리우드 액션을 자행하면서 비판이 더욱 늘었다.
2014-15 시즌 전자랜드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리카르도 포웰에게 강력한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문제는 그러고도 더블 파울로 포웰도 파울을 함께 받았고, 포웰을 파울 트러블로 몰아넣었다. 농구 관련 사이트에선
제일 큰 문제는 김주성의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주성이 프로 데뷔 이전이나 이후에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좋은 데다 모기업 동부화재 보험 광고를 찍으면서 부모의 얘기가 나오니까 라이트팬들에게 "농구 잘하고 성실한 효자" 이미지가 씌워진 덕분.[27] 이미 효자 이미지가 나오기 전부터 플랍질이나 서장훈한테 저지른 주성타 등 타 팀 골수팬들에게는 비호감 1순위였다. 지금은 인터넷과 미디어 발전 덕택에 전성기 때 효자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플라핑에 대한 농구팬들의 시각이 많이 안 좋아지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면서 나날이 비판의 강도가 오른다. 급기야 2016-17 시즌에는 경기 중 몸싸움 여파로 넘어지자 대다수의 농구팬들이 저거 나이 먹어서 드르렁하는 거다 라면서 조롱하는 이야기도 많이 보일 만큼 저런 리액션들 때문에 본인의 주가를 많이 깎아먹는다.
최근에는 심지어 코치로 부임한 이후 신인에게 1대 1코칭을 할 때 플라핑을 가르쳐 크게 비난받은 적이 있었다 영상링크
DB팬들은 KBL 레전드 아니냐 인정해줘라라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지만 이 과도한 플랍질, 상대 선수의 부상도 거리낌없어하는 잔혹함은 많은 팬들이 은퇴 이후에도 김주성과 DB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4.2. 흑역사[편집]
그리고 농구팬들은 경기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희대의 상부상조 개그를 보고 만다. 전자랜드 선수들은 김주성이 블록 하기 좋게 슛을 갖다 바치고, TG 선수들은 문경은이 슛 쏘기 좋게 알아서 노마크로 자리를 비워주는 상황이 경기 내내 이어지는 어이없는 꼴이 펼쳐진 것이다. 형님 좋고 아우 좋고인지 뭔지 하여간 이들이 벌인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인해 김주성은 그 경기에서 11블록을 달성하고 트리블 더블도 덤으로 하며 시즌 블록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당연히 어이가 가출하는 상황을 본 농구팬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KBL은 결국 그 시즌의 3점슛 1위와 블록 1위를 해당자 없음으로 수상 처리하며 어물쩡 넘어갔다.
하지만 2017년 KBL 홈페이지의 주요 기록 항목을 보면, 문경은의 3점슛 조공 기록과 김주성의 한 경기 최다 블록 기록으로 저 2004년 3월 7일 짜고친 고스톱 같은 날의 기록이 버젓이 올라가 있다.
4.3. 김주성 외곽슛 개발 막은 한국농구[편집]
용병 이전 전통적 한국 농구는 양궁농구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농구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외국에 비해서 장신센터가 골밑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오랜 컴플랙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외곽이 밀려서 지는 경우는 적었고, 높이의 차이 골밑파워 차이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전성기 이후 장신인 서장훈이 골밑을 버리고 미드레인지 점퍼를 던진다는 이유로 겉멋이 들었다며 욕을 엄청 먹었다. 그런 이유로 장신 센터인 김주성, 하승진의 경우 중거리 슛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음에도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중거리슛을 자제하도록 지도했고, 그 결과로 김주성은 충분히 성공한 선수가 되긴 했지만 수비와 팀 플레이 중심의 선수로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사실 김주성이 이미지와는 달리 중장거리 슈팅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 것이, 선수 생활 후반에 3점 슛을 개발한 이후로 선수 생활 연장이 가능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김주성이 더 일찍 미들슛과 3점을 장착한 선수였다면 더욱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김주성이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지만 역대 No.1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고, 또 중국 등 국제경기에서 훌륭하게 활약했지만 그렇다고 압도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골밑에서의 활동 제한을 두고 잠재력을 선긋지 않았더라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인 것이다.[28]
5.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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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큰 김주성 김향란 남매와 달리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 신장은 160cm 정도고[29] 아버지는 170cm 정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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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의 빡빡한 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 때문에 한 선수가 한 팀에서 오래 뛰다 명예롭게 은퇴하기가 참 까다로운 게 현실인데, 김주성은 그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입단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단 한 팀에서 뛰었다. 일단 구단 내에서는 성골이라 할수 있는 중대 출신이기도하고 은퇴하자마자 팀의 코치로 합류한것을 보면 차기 DB 감독 유력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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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프로농구 유일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인데, 야구 최대 합법적 병역브로커처럼 정작 본인도 군 면제[30]를 받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6명의 선수를 병역 혜택을 제공했지만 국가대표 은퇴로 병역 브로커 활동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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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바라는 것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그게 밥이었다고 한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 밥주세요" 외엔 달리 말을 잘 안했다고... 집안 형편이 어렸을 때 어려웠던 것도 있었겠지만 투정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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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서장훈과의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했던 선배를 서장훈을 꼽았다. 그 인터뷰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그때 그렇게 쳐놓고서. 사실 그 사건 이후 김주성과 서장훈이 사이가 나빠졌다는 루머가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인 듯.[31][32] 일례로, 2016년 KBS1 에서 방영한 교양 프로인 우리들의 공교시에서 서장훈이 서울의 등촌고등학교를 약 7개월간 객원 감독으로서 전국대회 우승을 목표로 지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최종회에서 연예인 농구팀과의 친선 경기에 상대적인 기량 열세에 당시 KBL 현역이던 센터 둘을 초빙하였는데...그 사람이 바로 김주성과 김종규였다. 더군다나 김주성은 소속팀의 소재지인 원주에서 서장훈의 부름에 4시간을 걸려 달려왔고, 연습중 무릎부상으로 좋지 않은 컨디션인데도 불구하고, 한 쿼터 뿐이었지만 프로선수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고등학생 선수들의 우상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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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에서 선행으로 유명한 선수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로 매월 30만 원씩 받는 선수 연금을 장애인과 저소득층 등 불우이웃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보였다.[33] 국내 선수가 평생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연금을 기부하는 것은 김주성이 처음이다. 연금 외에도 선수시절 자신의 리바운드와 연계해 연탄과 도서를 저소득층에게 전달해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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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시즌 KBS1에서 중계한 4강 플레이오프 3차전과 챔피언결정전 4차전 해설을 맡았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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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영선수..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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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KGC인삼공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안양 KGC인삼공사 프로농구단(Anyang KGC Ginseng Corporation Pro Basketball Club)은 경기도 안양시를 연고로 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농구단이다. 전신 구단으로는 안양 SBS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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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KGC
한승희선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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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농구선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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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고 있다. 다만 조상현 감독의 스타일 문제와 계속되는 손목부상으로 인해 클러치 타임에서 슈팅을 미스하는 등 기복이 있다. 하지만, 팀의 시즌 초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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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도선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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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연봉은 얼마일까? 농구선수 연봉 1위, 프로필, 정보
농구선수 김선형 선수는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에이스이자 SK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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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아빠가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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